한국 축구사에서 허정무만큼 화제를 몰고 다닌 인물도 드뭅니다.
허정무는 원정 월드컵 첫 16강이라는 위업을 남긴 지도자 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갈등과 사건의 중심에 서기도 했죠.
그의 이름 석 자에는 한국 축구의 영광과 아픔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 글은 그의 이력과 차범근과의 앙금, 마라도나와의 충돌을 차례로 정리합니다.
찬사와 논란이 교차한 한 축구인의 자취를 담담하게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라운드를 누빈 선수에서 지도자로

사진 출처 (ohmynews)
허정무는 1980년대 한국 축구의 중심을 지킨 미드필더 입니다.
전남 진도의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농사일을 도우며 자랐죠.
해병대 축구단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그는 유럽 진출을 일찌감치 결심했습니다.
1980년 네덜란드 명문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한 그는 곧 주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가 유럽 무대에서 남긴 기록은 통산 93경기 13골로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해외로 눈을 돌린 계기는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진출이었다고 그는 회고합니다.
1983년 국내로 돌아온 그는 현대 호랑이에서 세 시즌을 뛴 뒤 은퇴했습니다.
원정 월드컵 첫 16강의 주인공
허정무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이끈 축구 감독입니다.
한국인 지도자로서 원정 월드컵 첫 16강 진출이라는 기록이 그의 손에서 나왔죠.
대표팀은 그리스전 2대 0 완승으로 대회의 산뜻한 출발을 알렸습니다.
이어진 나이지리아전 무승부로 팀은 조 2위를 확정하며 16강에 올랐습니다.
아쉬움은 우루과이전에서 찾아왔고 그는 1대 2 패배로 8강 문턱에서 멈췄습니다.
수중전 속에서도 이청용의 동점골이 터지며 팀은 끝까지 맞섰습니다.
이 대회 15위라는 성적은 한국 축구사에 그의 이름을 또렷이 새겼습니다.
스스로 걸어 나온 감독
허정무는 월드컵 이후 협회의 재계약 제안을 스스로 거절했습니다.
역대 대표팀 감독이 늘 경질로 물러난 관행을 그는 깨고 싶어 했습니다.
자기 발로 걸어 나오는 선례를 만들자는 생각이 사퇴의 이유였죠.
이후 인천 유나이티드를 맡았지만 그는 성적 부진으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지도자 일선에서 내려온 뒤 그는 축구 행정가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를 차례로 맡은 것도 이 무렵있었죠.
대전 하나 시티즌 이사장까지 지내며 그는 경영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오랜 세월 얽힌 대선배와의 감정

사진 출처 (chosun)
차범근 허정무 두 사람의 관계는 한국 축구의 오랜 이야깃거리 입니다.
유럽에 진출한 한국 선수 1호와 2호였던 둘은 늘 비교 대상이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고려대와 연세대로 갈린 라이벌 구도가 두 사람을 갈라놓았습니다.
감독이 되어서도 포항과 울산에서 맞서며 둘은 경쟁을 이어갔죠.
이 얽힌 인연은 세월이 흐르며 서서히 감정의 골로 굳어졌습니다.
성격과 축구 철학이 극단적으로 달랐던 점도 둘의 거리를 넓혔습니다.
회고록이 밝힌 30년 전의 상처
허정무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오래도록 묻어둔 사연을 털어놨습니다.
1980년대 초 방송사는 유럽에서 뛰던 두 선수의 합동 인터뷰를 기획했습니다.
만삭의 아내와 기자 부부를 태운 그는 500킬로미터를 달려 프랑크푸르트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도착했을 때 약속은 이미 취소된 상태였죠..
이 일로 그는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안고 오랫동안 침묵했습니다.
대선배를 피하는 모습을 두고 축구계는 열등감이라 넘겨짚기도 했습니다.
30년이 지나서야 그는 회고록을 통해 당시의 서운함을 조심스레 꺼냈습니다.
프랑스 월드컵에서 터진 정면 충돌

사진 출처 (nate)
허정무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방송 해설위원으로 현장에 있었습니다.
대회 전부터 그는 차범근의 수비 중심 전술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죠.
멕시코전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선수 기용을 두고 돌직구를 던졌습니다.
네덜란드에 0대 5로 참패한 뒤 그의 해설에는 쓴소리가 쏟아졌습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이 대회를 거치며 세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축구계와 언론은 둘이 서로를 피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입에 올렸습니다.
시간이 풀어준 앙금
허정무는 훗날 감독으로 차범근과 다시 마주하며 예의를 갖췄습니다.
전남 드래곤즈 사령탑 시절 그는 수원 벤치로 찾아가 먼저 인사를 건넸습니다.
차범근도 그의 인사를 반갑게 받으며 오랜 앙금을 조금씩 풀었습니다.
2010년 월드컵 때 비난받던 그를 차범근은 해설자로서 감쌌습니다.
전쟁 중에 장수를 흔들어선 안 된다는 말이 그 두둔의 요지였죠.
가장 큰 상처를 준 상대를 감싸는 모습에서 두 원로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두 사람의 화해는 세월이 남긴 성숙의 결과로 읽힙니다.
세계적 스타와 얽힌 거친 승부

사진 출처 (donga)
허정무 나이 서른 무렵의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와 맞붙었습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그는 서른 안팎의 나이로 대표팀을 지켰습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그는 디에고 마라도나를 전담 마크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을 그는 시종 거칠게 따라붙었죠.
이 장면은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하나의 신조어를 낳았습니다.
거친 몸싸움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죠.
태권 축구라는 이름의 탄생
허정무는 마라도나의 허벅지를 향한 깊은 태클로 파울을 범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이 장면을 두고 태권 축구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죠.
쓰러진 마라도나에게 다가간 그는 고의가 아니라며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심판에게도 실수였다고 해명한 덕분에 그는 퇴장을 가까스로 면했습니다.
훗날 그는 그것이 태권도가 아니라 축구였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마라도나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를 맹비난했죠.
특히 17번을 콕 집어 저격하며 마라도나는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24년 만의 감독 대결과 화해

사진 출처 (nate)
허정무와 마라도나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양 팀 감독으로 재회했습니다.
마라도나는 경기 내내 터치라인까지 나와 한국 벤치를 자극했습니다.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낸 그는 대기심에게 제지를 요청했습니다.
두 사람은 2017년 U-20 월드컵 조 추첨 행사에서 반갑게 손을 맞잡았죠.
당시 태클 사진을 받아 든 마라도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태권 축구 허정무를 기억한다며 마라도나는 그를 반갑게 맞았습니다.
감독으로 원정 16강을 이룬 2010년에는 이미 노장의 반열에 접어든 나이였습니다.
한 시대를 관통한 그의 나이는 곧 한국 축구가 걸어온 세월과 겹칩니다.
그가 남긴 자취와 재평가
허정무를 향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졌습니다.
재임 당시 그는 소극적 전술과 선수 기용으로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죠.
국내파 감독이 늘 겪는 냉정한 시선 속에서 그는 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과는 시간이 흐르며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두 흐름은 그를 둘러싼 상반된 시선을 보여줍니다.
비판을 받은 지점들

사진 출처 (dailian)
허정무는 재임 기간 내내 수비적 운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습니다.
아르헨티나전 1대 4 대패는 여론의 거센 질타를 불러왔죠.
골키퍼와 오른쪽 수비 기용에서 그는 아쉬움을 남겼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브라질 월드컵 부진 이후 그는 협회 부회장직에서 물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를 향한 비판은 성적과 전술을 둘러싼 냉정한 평가에서 비롯됐습니다.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에도 그는 이렇다 할 반등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현장을 오래 떠나 있었다는 점 역시 우려의 이유로 꼽혔습니다.
세월이 가져온 재조명
허정무는 대표팀 암흑기가 이어지면서 다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재임 기간 28경기 무패라는 기록은 그의 지도력을 뒷받침합니다.
지금까지도 원정 월드컵 16강을 이룬 유일한 한국인 감독이었죠.
전남 드래곤즈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라는 평가도 그에게 따라붙습니다.
그의 자취는 결국 성과에 걸맞은 이름값을 되찾았습니다.
히딩크와 벤투를 제외하면 월드컵 16강을 이룬 감독은 그가 유일하죠.
그의 성취는 대표팀의 침체기를 지나며 더욱 선명하게 부각됐습니다.
글을 마치며
영상 출처 (축커룸)
허정무는 논란과 성취를 함께 짊어진 축구인입니다.
대선배와의 앙금과 세계적 스타와의 충돌을 겪으며 그는 이름을 새겼죠.
그의 거친 승부 뒤에는 원정 16강이라는 뚜렷한 성과가 자리합니다.
이 정리가 그를 둘러싼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한 축구인의 자취를 함께 되짚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남긴 뜨거운 승부의 기억은 오래도록 팬들의 가슴에 남을 것입니다.










